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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 등장인물, 다큐윤리, 제작배경

by eru0218 2026. 10. 2.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호석·미옥 부부와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상우 부부가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영화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9월 23일 일부 극장에서 개봉한 뒤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이 글은 전도연, 설경구, 조여정, 조인성이 연기한 네 인물의 관계에서 출발해 타인의 아픔을 기록하는 일의 윤리를 따져 보고, 극장 투자가 막힌 작품이 넷플릭스와 만나 완성된 과정까지 짚으며 직접 느낀 점도 함께 담았다.

<가능한 사랑> 등장인물: 서로 다른 사랑의 얼굴

영화 <가능한 사랑>의 주요 등장인물은 해고 노동자 최호석과 안미옥 부부, 다큐멘터리 감독 이예지와 그의 남편 상우, 이렇게 네 사람이다. 영화는 해고 노동자 가족의 현실과 다큐멘터리 촬영을 통해 두 부부의 관계를 따라가며 서로 다른 삶의 조건이 감정에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 보여준다.

설경구가 연기한 호석은 SP중공업에서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뒤 파업과 진압을 겪으며 깊은 심리적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오랜 동료와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게 변하고 가족 앞에서도 이전의 모습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해고의 상처는 직장을 잃는 순간에 그치지 않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흔들며 가정 안까지 스며든다.

전도연이 맡은 미옥은 남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가족의 현실을 돌봐야 하는 아내다. 조여정이 연기한 예지는 호석과 미옥의 삶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고, 조인성이 맡은 상우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예지의 남편이다.

촬영이 이어지면서 예지와 미옥은 점차 친구처럼 가까워진다. 하지만 한 사람은 카메라를 들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앞에 서 있다는 차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따뜻해 보였던 관계 안의 불균형도 선명해진다.

예지가 두 사람의 삶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미옥은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생각을 조금씩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나는 미옥의 변화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황과 감정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후 미옥이 내리는 선택도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본 끝에 내린 결정처럼 느껴졌고, 그만큼 인물의 변화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두 부부가 가까워질수록 서로 다른 생활환경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상우에게 별장은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의 공간이지만, 호석과 미옥에게 안정된 생활은 쉽게 누릴 수 없는 현실에 가깝다. 이런 점이 같은 공간에 머물더라도 그곳을 받아들이는 두 부부의 시선이 다른 이유이다. 이러한 차이가 쌓이면서 네 사람 사이의 경제적. 사회적 간격도 점차 선명해진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일까? 결국 그 중심에는 미옥이 있다. 미옥을 둘러싼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머지 세 사람의 감정과 선택도 달라지고, 그 과정에서 영화의 갈등이 점차 선명해진다.

또한 예지를 단순히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타인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과 그 아픔을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는 행동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한 인물의 입장만을 따라가기보다 네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번갈아 바라보게 된다.

사랑이라는 말을 내세우면서도 그 의미와 모습을 하나로 규정하지 않는 점 역시 마음에 들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나 역시 내 경험과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인물들의 관계뿐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한동안 마음에 남았다.

다큐윤리: 타인의 고통을 담는 시선

이 작품에서 다큐멘터리 촬영은 인물들의 관계가 달라지는 계기가 된다. 이예지가 해고 노동자 최호석과 그의 아내 안미옥을 만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개인의 기억은 사회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호석에게 SP중공업에서의 해고와 파업, 진압은 지금도 이어지는 일이다. 이후의 생활과 인간관계에까지 흔적이 남아 있어서, 카메라 앞에서 그 일을 다시 꺼내는 데는 무게가 따른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기록하는 일에는 어떤 책임이 따라야 할까? 영화는 이 질문을 예지와 미옥의 관계를 통해 풀어간다. 예지는 노동자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고, 미옥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예지와 가까워진다. 처음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는 듯하지만 촬영이 깊어질수록 두 사람의 입장은 달라진다. 미옥에게 자신의 이야기는 살아온 시간과 가족의 기억이지만, 예지에게는 영화로 완성해야 할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차이가 기록의 윤리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오래된 친구와 나눴던 한 번의 대화가 떠올랐다. 몇 년 전 친구가 직장을 그만두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어느 금요일 저녁 카페에서 만난 친구는 회사에서 겪은 일부터 마지막 출근 날의 감정까지 차분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그렇게 힘들었다면 차라리 잘된 일일 수도 있다”, “조금 쉬면서 다른 일을 찾아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비슷한 일을 겪었던 내 경험도 꺼냈다. 그런데 친구는 잠시 침묵하더니 “나는 해결 방법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상대방의 마음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사람이었다. 그 후로는 누군가 힘든 이야기를 꺼내면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질문은 상대가 말을 끝낸 뒤에 꺼내고,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상황을 다 안다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이런 기억이 남아 있어서인지, 영화 속 예지를 한쪽 시선으로만 바라보며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예지에게는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려는 의도가 있지만, 좋은 의도만으로 기록되는 사람의 감정까지 지켜 주지는 못한다. 특히 가까워졌다고 믿었던 사이가 촬영을 거치며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가능한 사랑>이 묻는 다큐윤리는 타인의 삶을 바라볼 때 내가 아는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그 사람의 고통을 내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이 질문은 영화 속 인물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카메라를 든 감독과 마찬가지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나 역시 상대의 경험을 내 기준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했다. 결국 이 영화는 타인의 삶을 이해한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먼저 돌아보게 만들었다.

제작배경: 왜 넷플릭스가 선택했나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인 신작 <가능한 사랑>은 극장 투자가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넷플릭스와 만나 제작된 작품이다. 특히 넷플릭스가 투자 과정에서 작품을 기다려준 것은 물론 창작의 독립성까지 존중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은 작품의 내용만큼이나 눈길을 끈다.

그는 대기업의 집단해고가 단순한 경제적 문제에 그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관계까지 바꿔놓는 사건이라고 보며 이 영화를 구상했다. 처음에는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투자자를 찾았지만 국내 투자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감독은 작품의 구상을 구체화했던 지난해 상반기가 한국 영화산업의 체력이 특히 약해진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런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프로젝트 초기부터 작품에 관심을 보였고, 감독이 다른 투자처를 찾는 동안에도 기다린 뒤 제작에 참여했다. 제작 과정에서도 별도의 요구나 간섭을 하지 않았으며, 이창동 감독은 이러한 환경 덕분에 지금까지 만든 영화 가운데 가장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서울 오피스의 제작 지원 인력을 투입하고 충분한 제작 기간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영화의 완성을 도왔으며, 완성 이후에는 영화제 출품과 시상 시즌 홍보까지 이어가고 있다. 극장 개봉에 대한 약속도 지켜졌다. 영화는 9월 23일 일부 극장에서 먼저 관객을 만났고, 11월 6일에는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있다. 또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데 이어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뉴욕영화제에도 초청됐다.

무엇보다 이창동 감독 같은 거장도 투자를 구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이 최근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감독이 개봉 약속을 지켜준 넷플릭스에 감사를 전한 대목에서는 이번 협업이 단순한 계약을 넘어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해고 노동자와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의 이야기는 흥행 가능성을 우선하는 환경에서는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소재다. 그런 상황에서도 넷플릭스가 기다려준 덕분에 감독이 처음 구상한 방향을 크게 바꾸지 않고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나는 넷플릭스가 이 영화에 제공한 가장 큰 도움은 제작비 자체보다 작품을 기다릴 시간과 창작의 독립성이었다고 생각한다. 극장과 스트리밍을 단순히 나누기보다 영화가 만들어져 관객에게 닿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감독의 말에도 공감했다. 베니스 수상이라는 결과도 인상적이지만, 완성까지의 과정을 알고 나니 영화 속 노동과 해고의 이야기도 조금 다르게 읽혔다. 제작 과정에서 실제 한국 영화계의 투자 현실을 지나온 작품이라는 사실이 이야기 속 인물들의 불안과 선택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다만 극장 상영이 일부로 제한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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